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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피보다 진한 손끝의 온기를 말했습니다

by jdyddy 2025. 4. 21.

함께 밥을 먹는다는 말의 무게

1. 줄거리 요약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어느 가족〉은 일본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자리 잡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깊고 섬세한 작품이었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모여 있지만, 그들의 일상 속에는 혈연 이상의 따뜻함과 애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영화의 무대는 도쿄의 허름한 외곽 주택. 이곳에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그의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할머니 하츠에, 그리고 어린 쇼타와 아이처럼 보이는 소녀 유리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법적, 생물학적 의미에서는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돌보며, 누군가에게 버려진 삶을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사무와 쇼타는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어느 겨울날 쇼타는 발코니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녀 유리를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유리는 학대받는 환경에 놓여 있었고, 오사무 부부는 그녀를 보호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이 가족은 다섯 명이 함께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가난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었습니다. 쇼타는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르며 도둑질을 배우고, 노부요는 유리를 목욕시키며 진짜 엄마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관계는 점점 세상의 시선과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쇼타는 어느 순간부터 도둑질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일부러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개입하게 되었고, 유리의 실종 사건과 이들의 관계가 외부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각자 다른 이름, 다른 사연, 다른 과거를 가진 이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졌고, 영화는 그들이 진짜 가족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순간들을 조용히 돌아보게 했습니다.

 

2. 연출, 상징 및 사회적 배경

〈어느 가족〉은 일본 사회에서 쉽게 다루지 않는 빈곤, 아동 학대, 사회적 배제와 같은 주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에서 법적 정의와 인간적 정의의 충돌을 탐구했으며, “가족이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끝없이 던졌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은 연출의 절제에 있었습니다. 감독은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서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렸습니다. 인물들은 화려한 대사나 드라마틱한 갈등 대신, 아주 작은 제스처와 눈빛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도둑질’이었습니다. 이 가족은 모두 무언가를 ‘훔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훔치고, 이름을 훔치고, 심지어 가족의 형태까지도 훔쳤습니다. 그러나 그 도둑질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사회가 내준 빈 틈을 메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저항이자, 애정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가난을 ‘비참하게’ 표현하지 않는 방식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는 이들이 살아가는 허름한 공간을 단순한 불행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 웃음과 유머,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이 가족은 분명히 사회의 경계 밖에 있었지만, 그들이 주고받은 감정만큼은 그 어떤 부유한 가정보다 더 진실했음을 감독은 은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음악과 조명, 카메라의 거리 또한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영화는 대부분 고정된 앵글과 미디움 숏으로 촬영되었고, 관객은 마치 ‘훔쳐보는 듯한’ 시점으로 이 가족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몰랐던, 혹은 외면했던 ‘보이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성찰로 연결되었습니다.

 

3. 총평 및 개인적인 감상

〈어느 가족〉은 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재구성한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혈연과 법적 관계를 중심으로 가족을 이해하지만, 이 영화는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상처를 보듬고, 손을 잡아주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가족을 만드는 요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은, 쇼타가 경찰에게 “그 아이는 정말 우리 가족이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녀를 동생처럼 여겼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진짜 가족’은 선택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노부요가 경찰 조사에서 했던 말, “낳았다고 모두 부모는 아니잖아요”는 매우 날카로운 진술이었습니다. 이 한마디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완벽하게 요약하고 있었고, 관객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사랑은 혈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과 감정 속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족〉은 조용하고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사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족이 아닌 가족’을 외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