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영화 '미키17'은 에드워드 애쉬턴의 동명 소설 『Mickey7』을 원작으로, 인류가 생존을 위해 미지의 행성을 개척하려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스릴러입니다. 주인공 ‘미키’는 이주 선발대에서 ‘소모품(Expendable)’이라는 특수 임무를 맡습니다. 이 역할은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투입되어 죽더라도 무방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면 그의 의식은 클라우드에 저장되었다가 새 복제체에 업로드되어 다시 살아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미키는 무려 17번이나 죽고 되살아나며 미키17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무 수행 도중 실종된 미키17이 극적으로 살아 돌아오지만, 그동안 이미 ‘미키18’이라는 새 복제체가 생성되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시스템은 단 하나의 미키만 존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두 복제체의 공존은 프로그램적 오류이자 존재론적 위협이 됩니다. 두 미키는 서로를 제거하려 들며, 동시에 자신이 진짜 미키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합니다.
영화는 이 대립을 통해 인간 존재의 정의와 자아의 연속성, 기술로 대체 가능한 삶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미키들의 분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생존 본능과 정체성의 위기를 대변하며, 개개인이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은유로 작용합니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SF적 상상력 속에 인간성, 윤리, 존재의 가치를 성찰하는 무게 있는 질문들을 던지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2. 촬영배경
영화는 영국의 워너브라더스 리브스덴 스튜디오에서 2022년 8월부터 12월까지 촬영되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첨단 기술과 감성적 연출을 결합해 우주 개척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사실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구현했습니다. IMAX 카메라와 고해상도 디지털 촬영이 병행되었고, LED 볼륨 기술을 도입해 외계 행성의 장면을 현실감 있게 연출했습니다. 차가운 얼음 행성 ‘니플하임’은 블루와 그레이 중심의 색채와 미니멀한 세트 디자인으로 고립된 분위기를 강조했고, 외계 생명체 ‘크리퍼’는 크루아상, 아르마딜로, 강아지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동일 인물이지만 성격과 감정이 다른 여러 클론을 연기하기 위해 캐릭터별로 걸음걸이, 말투, 심리 상태까지 세밀하게 조절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미키는 단순한 SF 캐릭터가 아니라, 매 장면마다 자기 존재를 의심하고 또 정의하려는 내면의 싸움 그 자체였다”고 밝혔습니다. 패틴슨은 복제와 죽음을 반복하며 인간성을 찾아가는 인물을 위해 실제로 심리 상담을 받으며 감정 소모를 조절했다고 전해지며, 봉준호 감독 또한 그에게 대사 이상의 ‘침묵의 감정선’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기와 연출의 조화는 미키17을 한층 더 깊이 있고 사실적인 SF 드라마로 완성시켰습니다
3. 총평
영화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단순한 SF 블록버스터를 넘어서는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은 '미키17'이라는 복제된 인간의 존재를 통해 자아와 감정, 죽음에 대한 고민을 섬세하게 연기해냈습니다. 이 작품에서 미키는 처음에는 단순히 ‘죽어도 되는 존재’로 취급되지만, 복제된 또 다른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점차 스스로를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시스템이 정해놓은 기능적 존재를 넘어서, 스스로 선택하고 감정에 책임지는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여자친구 ‘나타샤’입니다. 나타샤는 미키를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며,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데 정서적 지지자이자 촉매제로 작용했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미키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하고, 이는 그의 감정과 자율성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복잡한 감정선을 과장된 연출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얼마나 고유하게 여기는가? 미키17은 시각적 완성도와 내면적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인간성과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정제된 드라마로 풀어낸 인상 깊은 영화였습니다.